석박통합 6년 차,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. 이 시기는 학위 과정 중 가장 **'깊고 어두운 터널'**을 지나는 시기라고들 합니다. 코스웍은 끝났고, 연구는 루틴이 되어버렸는데, 끝이 보일 듯 말 듯 하니 막막함이 밀려오는 것이 당연합니다.

작성자님의 글에서 **'배부른 허무함'**과 '현실 도피성 안주'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복잡한 심경이 느껴집니다. 지금 느끼시는 감정들을 조금 더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몇 가지 이야기를 건네고 싶습니다.


1. '안정'이 주는 독, "골든 케이지(Golden Cage)"

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생활고가 없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지만,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원생에게는 **'끝내야 할 절박함'**을 앗아가는 독이 되기도 합니다.

  • 생존 본능의 부재: 남들은 "당장 돈 벌어야 해"라는 생존 본능으로 논문을 밀어붙이고 졸업을 서두르는데, 작성자님은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. 그러다 보니 "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"라는 철학적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.
  • 죄책감과 자존감: 돈을 못 버는 것에 대한 현실적 타격은 없지만, **'성인으로서 제 몫을 못 하고 있다'**는 무의식적인 부채감이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을 수 있습니다. 연애를 못(안) 하는 것도 어쩌면 "아직 나는 준비된 어른이 아니야"라는 심리가 기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.

2. 취직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 (합리화일까, 통찰일까?)

"취직해도 마찬가지니 지금이 낫다"는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위험합니다.

  • 맞는 말: 회사에 가면 또 다른 종류의 답답함과 '부속품이 된 기분'을 느낍니다. 연구만큼의 자율성은 없죠.
  • 위험한 생각: 하지만 직장에는 **'퇴근'**과 '보상(월급)' 그리고 **'사회적 소속감'**이 있습니다. 대학원 생활은 일과 삶의 경계가 없고, 성과가 나올 때까지 보상이 유예됩니다. 6년 동안 이 '유예된 삶'을 살았기 때문에 지치는 건 당연합니다. 사회에 나가면 적어도 **'오늘 한 일에 대한 대가'**가 통장에 찍히는 즉각적인 효능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.

3.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'마침표'입니다

연구와 공부를 좋아하셨던 분이라면, 지금의 권태는 연구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라 **'성장하고 있다는 감각'**이 무뎌졌기 때문일 겁니다. 6년 차면 알 거 다 알고, 랩 돌아가는 것도 눈에 훤하니 매너리즘에 빠지기 딱 좋습니다.

"지금이 나은 건가?"라는 질문은, "여기서 나가면 더 나을까?"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던지는 질문입니다.

하지만 확실한 건,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성장은 이제 임계치에 다다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. 이제는 부모님의 그늘과 학교라는 보호막을 벗어나, 거칠더라도 내 힘으로 서는 경험이 필요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.


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?

1. '졸업'을 탈출구가 아닌 '자격증 획득'으로 보세요 지금 당장 큰 뜻이 없어도 괜찮습니다. 다만, 6년을 투자했으니 '박사'라는 자격증(License)만은 확실히 챙겨서 나간다고 생각하세요. 박사 학위는 생각보다 사회에서 든든한 보험이 됩니다. 그 보험을 타기 위한 마지막 서류 작업 중이라고 생각하고 드라이하게 접근하세요.

2. 작은 성취를 만드세요 (연구 외적으로) 연구 외에 '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'을 만드세요. 운동으로 몸을 만들거나, 소액이라도 주식 투자를 해보거나, 아주 사소한 취미라도 좋습니다. '투입 대비 결과'가 바로바로 나오는 활동을 통해 떨어진 효능감을 채워야 합니다.

3. "어차피 별거 없다"면, 밖에서 별거 없는 게 낫습니다 학교 안이나 밖이나 지루한 건 매한가지라면, 돈을 벌면서 지루한 게 낫습니다. 경제적 독립이 주는 자유와 자신감은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. 그 자신감이 생겨야 연애도, 다음 스텝도 보일 겁니다.


지금은 짙은 안개 속에 있는 기분이시겠지만, 6년이나 버텨온 끈기라면 무엇이든 마무리 지을 힘이 분명히 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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